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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으로 쓸 것과 문단으로 쓸 것

나열해도 뜻이 유지되는 정보는 목록으로, 순서와 연결이 있어야 뜻이 서는 정보는 문단으로 두어야 각자 인용되기 좋은 형태가 됩니다.

WAVERO EDITORIAL6분 읽기댓글 0

글을 인용되게 만들려다 보면 목록이 유리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항목이 나뉘어 있어 뽑아 쓰기 좋다는 이유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쉽게 어긋납니다. 그러면 다 목록으로 만들면 되겠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목록과 문단은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겨루는 관계가 아닙니다. 담는 정보의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정보는 목록에 두어야 살고, 어떤 정보는 문단에 두어야 삽니다. 성격에 맞지 않는 형식에 담으면, 목록이든 문단이든 오히려 뜻이 상합니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더 인용되기 좋은가"가 아니라 **"이 정보는 어느 쪽에 맞는가"**입니다. 이 기준을 세우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가르는 기준은 나열해도 뜻이 유지되는가

기준은 하나로 좁힐 수 있습니다. 항목끼리 나열해도 각 항목의 뜻이 유지되는가입니다.

유지되면 목록입니다. 예를 들어 "필요한 준비물"이나 "확인할 항목"은 순서를 바꿔도, 하나만 뽑아 읽어도 뜻이 통합니다. 각 항목이 독립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보를 문단으로 풀어 쓰면 오히려 읽는 쪽이 항목을 하나하나 찾아내야 합니다.

유지되지 않으면 문단입니다. 앞 항목이 있어야 뒤 항목이 이해되거나, 순서 자체가 뜻의 일부이거나, 항목 사이의 연결이 핵심인 정보는 나열하는 순간 무너집니다.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가" 같은 내용은 근거가 순서대로 쌓여야 뜻이 서므로, 목록으로 쪼개면 논리의 연결이 끊깁니다.

목록에 맞는 정보문단에 맞는 정보
나열해도 각 항목이 독립적앞뒤가 이어져야 뜻이 섬
순서를 바꿔도 무방순서 자체가 뜻의 일부
하나만 뽑아도 통함연결이 끊기면 뜻이 무너짐
예: 준비물, 점검 항목예: 근거의 전개, 인과의 설명

표의 기준은 겉모습이 아니라 정보의 짜임입니다. 같은 주제라도 독립적으로 나열되는 부분은 목록으로, 이어져야 하는 부분은 문단으로 나뉩니다.

기준을 어기면 벌어지는 일

기준을 어겼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면, 왜 이 구분이 인용과 직결되는지 분명해집니다.

이어져야 할 내용을 목록으로 쪼개면, 맥락이 사라집니다. 근거가 순서대로 쌓여 결론에 이르는 설명을 항목 다섯 개로 나누면, 각 항목은 조각으로 남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결론이 되는지는 어디에도 없게 됩니다. 답변을 만드는 쪽이 항목 하나를 뽑아도 그것만으로는 뜻이 서지 않아, 오히려 인용되기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나열해도 될 것을 문단으로 뭉치면, 답이 숨습니다. 독립적인 점검 항목 일곱 개를 한 문단에 줄글로 풀어 쓰면, 읽는 쪽은 그 안에서 항목을 일일이 골라내야 합니다. 뽑아 쓸 조각이 문장 속에 파묻혀, 이것도 인용되기 어려워집니다.

note: 두 실수는 방향만 반대입니다

목록을 남용하면 맥락이 사라지고, 문단을 남용하면 답이 숨습니다. 둘 다 인용을 방해한다는 결과는 같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목록"도 "무조건 문단"도 답이 아니고, 정보마다 맞는 쪽을 고르는 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한 편의 글은 대개 둘을 섞습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막아두겠습니다. 글 전체를 목록이나 문단 중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 쓰인 글은 대개 한 편 안에서 둘을 섞습니다.

같은 글 안에서도 부분마다 정보의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은 문단으로 이어지다가, 그 개념을 적용할 조건을 나열하는 대목에서는 목록으로 바뀝니다. 이 전환이 자연스러우면 읽는 쪽은 각 정보를 가장 읽기 좋은 형태로 만나게 됩니다.

핵심은 형식을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내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성격을 보고 형식을 고르는 순서입니다. 문단으로 쓰다가 "여기는 나열이 낫겠다" 싶으면 목록으로 바꾸고, 목록을 쓰다가 "이건 이어서 설명해야겠다" 싶으면 문단으로 돌아옵니다. 형식이 내용을 따라가야지, 내용이 형식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형식을 먼저 정할 때내용을 먼저 볼 때
정해둔 틀에 내용을 우겨넣음정보 성격에 맞는 틀을 고름
맞지 않는 정보가 뒤틀림각 정보가 제 형태를 얻음
통일감은 있으나 뜻이 상함섞여 있어도 각자 인용됨

자주 묻는 질문

목록이 인용되기 좋다면서 왜 다 목록으로 하면 안 됩니까

목록이 유리한 것은 그 정보가 나열에 맞을 때입니다. 이어져야 할 내용을 목록으로 쪼개면 맥락이 사라져 오히려 인용되기 어려워집니다. 유리함은 형식이 아니라 정보와 형식이 맞을 때 생깁니다.

긴 문단은 무조건 목록으로 나누는 게 낫습니까

내용에 달렸습니다. 긴 문단이 독립적인 항목들의 나열이라면 목록으로 나누는 편이 낫지만, 근거가 이어지는 설명이라면 길어도 문단으로 두어야 합니다. 길이가 아니라 짜임이 기준입니다.

목록 항목을 한 문장씩 길게 써도 됩니까

각 항목이 독립적으로 읽히면 길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항목끼리 앞뒤가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목록이 아니라 문단이어야 할 내용이 목록의 탈을 쓴 것입니다.

어느 쪽인지 애매할 때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항목의 순서를 바꿔보면 됩니다. 순서를 바꿔도 뜻이 그대로면 목록에 맞고, 순서를 바꿨을 때 어색하거나 뜻이 틀어지면 문단에 맞습니다.

남는 이야기

목록과 문단을 고르는 일은 꾸미기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를 정직하게 담는 문제입니다. 나열해도 되는 것을 나열하고, 이어져야 하는 것을 잇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이 각 정보를 인용되기 좋은 형태로 만듭니다. 형식을 먼저 정하고 내용을 맞추려는 유혹을 내려놓고 내용의 성격을 먼저 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출처

이 글은 관측을 정리한 글이라 외부 인용을 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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